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사히나 다카시 (문단 편집) === 도쿄의 오케스트라들과 말년 === 1980년대부터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 신일본 교향악단 등 도쿄의 다른 주요 오케스트라들과도 협연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쿄에서의 주요 공연들은 신일본 교향악단이 담당했다. 1972년 문화방송과 후지 텔레비전이 재정난으로 인해 일본 교향악단에 대한 지원을 중지했는데,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오자와 세이지가 이에 반발해 자신을 따르는 단원들과 함께 창단했고 창단과 함께 아사히나는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브루크너,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회 시리즈와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를 일본 최초로 전곡 상연하며 화제가 되었다. 이와 함께 오사카 필도 도쿄 공연에 자주 출현해 오사카와 도쿄를 오가며 공연했다. 그러나 아직 아사히나는 60년대에 마지막으로 NHK 교향악단을 지휘하지 못하고 있었고, 도쿄의 청중들도 아사히나가 한번 정도는 베토벤이나 브루크너로 NHK 교향악단 정기 공연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1986년에 찾아왔는데. NHK 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지휘한 것이다. 비록 매년 송년 음악회로 공연하는 프로그램이기는 하나 정기 공연으로 베토벤 9번이 연주되는 것은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으로 볼프강 자발리슈가 전곡 공연을 지휘한 것 이후로는 처음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격이 높은 지휘자를 초청해 귄터 반트의 지휘로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귄터 반트가 질병의 악화로 지휘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악단 측에서도 다른 지휘자들을 대타로 초청하고자 하였으나 독일에서는 찾지 못하고 결국 일본에서 지휘자를 물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사히나 다카시가 정기공연 며칠 전에 신일본 교향악단과 니벨룽의 반지 공연을 도쿄에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급히 초청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지휘대에 서게 되었다. 이 공연도 실황으로 음반화되었는데, 그의 베토벤 9번 연주 중 최상으로 꼽힌다. 1986년에는 독일 대공로 십자장을, 1994년에는 일본 문화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음반들이 해외에도 소개되면서 북미와 유럽에서도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장이었던 헨리 포겔이 아사히나와 오사카 필의 브루크너 공연을 본 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에 초청해 브루크너 교향곡 5번, 8번, 9번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이 때 미국에 알려지며 브루크너 연주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2001년이 되면 7개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녹음과 4종의 브람스 교향곡 전집 녹음, 3종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녹음을 남겼고, 90세가 한참 넘어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최고령 지휘자 기록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점쳐졌다. 그러나 2001년 9월 오사카 필과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연주회와 10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회 대 신체적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 12월 29일 타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